2019/11/17

정의는 386세대의 뜨거운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386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권력이 없기에 남용할 수도 없다는 집단적 착각에 빠져 있다. 심지어 청와대 고위 공직자이면서도 권력은 저기 무덤 속의 박정희나, 전두환이나 미 제국주의나 검찰에 있는 것이며 자신들은 늘 저항세력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이 없기에 남용도 없다. 내가 하는 건 그냥 고생시킨 가족을 위한 작은 보답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동지들의 작은 무리수는 고생한 과거와 함께 열어갈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덮어줘야 한다고 여긴다. 

그들은 사람, 공정, 평화, 한반도, 상식, 깨어있는, 정의, 개혁, 민주, 서민, 우리 아이들, 민족, 시민 같은 두루뭉술한 말에 취한 채 그 속에서만 산다. 늘 스스로가 우리 사회의 보편적 공의의 담지자라고 여긴다. 386들의 마음이 어떻든 그들은 이미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기득권 가운데 한 축이다. 그럼에도 공익의 담지자인 스스로가,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고 부당한 이익을 갈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주류로서 사회적 감시와 때로는 질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자의식이 없다. 

그들은 공직자로서 자신의 재테크를 딱히 숨기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공직자로서 대중의 눈을 조심해야 한다는 자각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정의는 386세대의 뜨거운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 편파적인 우리들이 부딪치고 또 합의해나가는 구체적인 순간에 있다. 

황두영 <사시인 2019. 10. 22.>

2019/11/07

Shot in the Heart (내 심장을 향해 쏴라)

"나를 처벌하기 위해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내가 원하는 바이고, 나의 의지이니까. 당신들은 나의 마지막 살인을 도와주는 셈이다." 
온 나라가 게리를 증오했다. 그가 저지른 살인 때문이 아니라, 그가 도도하고 오만한 태도로 자신이 빠져나갈 길, 결국 자신을 승리자로 만들 방법을 이미 다 마련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리 길모어가 스스로에게 죽음의 형벌을 내리면서도 사형제도를 비웃었던 것은, 그 파멸의 신화 속에 얽힌 인간사회의 코드를 읽어내지 못하는 제도의 무능함과 모순 때문이었다.   
게리의 폭력적 에너지의 기원은... 미 대륙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종교적 피의 역사와 그 신화이며, 현대 미국의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치러야 했던 타락과 폭력의 시대, 가부장제도가 옹호해 온 부권의 독재와 횡포, 또한 아이에 대한 어른의 비겁한 폭력과 구타, 그리고 교화敎化가 아닌 교악敎惡의 원천이 되어버린 형벌제도이다. 

게리의 출감평가서를 작성했던 변호사는 이렇게 적었다. "길모어 군은 적절한 윤리적 규범 대신에 쾌락 본능을 따르며, 자신의 욕망을 즉각 만족시키려 한다. 타인에 대해 큰 적대감을 갖고 있어서, 스스로를 일종의 편집증적인 고독한 삶으로 몰아갔다. 또한 그는 자신의 성질을 전혀 통제하지 못한다."

사실 나는 어머니와 형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아버지를 위해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아직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놀라웠다. 어쩌면 그들이 눈물을 흘린 이유는 아버지가 그 긴 세월 동안 베풀지 않았던 사랑에 대한 서러움, 이제 화해의 기회를 영영 상실했다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낳고 그 가족을 부양하느라 고생도 했지만, 동시에 가족들의 영혼과 희망을 망가뜨리기도 했다.

프랭크 길모어와 베시 브라운-- 그 얼마나 비참하고 가련한 인생들이었던가. 난 그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그들이 자식을 낳아 세상에 내보낸 것, 그것은 정말로 통탄할 일이었다.


감옥에서 보낸 그 잔인한 세월들이 그들을 그렇게 바꿔놓은 거야. 그들은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었지. 하루살이 같은 삶을 살다가, 어느 날 죽음이 그 삶에서 탈출할 수 있는 출구로 보이기 시작하지. 그건 모든 것으로부터의 탈출구이기도 해. 그들 중에는, 다른 모든 것들은 두려워도 죽음만은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있어. 그러면 그들은 대단히 위험한 존재가 되고 말아. 그들은 가둬버릴 수도 없어. 그들이 원하는 것이 죽음이니까. 그들은 정말로 다른 인간에게 위험한 존재야. 그런 사람들 수천 명이, 바로 게리 같은 사람들이 이 땅을 활보하고 있어. 문제를 안고 있는 아이, 그 문제는 정서적인 것일 수도 있고, 가정문제일 수도 있겠지. 그런 아이를 그 폭력이 난무하는 소년원이나 교도소에 넣는다고 해봐. 그러면 결국 그 아이는 내 동생 게리처럼 될 가능성이 많지. 게리는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어버렸어. 그는 죽음이 자신을 해방시켜 주길 원하고 있어. 


그가 원한 것은 죽음이었으며, 그것은 그의 최종적인 구원의 시나리오이자, 법으로부터의 마지막 탈출구였다. 게리에게 있어서 최대의 모순은 법이었다. 그가 보기에 법은 지금까지 늘 그를 망가뜨리는 길로만 그를 몰아왔다. 그런데 이제 그가 구제의 가능성을 완전히 포기해버린 지금에 와서야, 그를 구하겠다고 나서고 있었다. 그 법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그는 모든 것을 버려야 했다. 


Everyone makes mistakes and experiences failure in life. But of all the missteps people might make in their lifetime, bad parental upbringing is the worst. It is more likely to have a huge impact on a child than anything else. Inconsistent rules and expectation, emotional and physical abuses, and financial instability could result in transforming a promising future every child deserves to have. After all, good nurture turns out to be fundamental education in which parents have to be successful. Do not give a birth if you don't raise a child with responsibility. 
I firmly thought that criminals should be confined to a prison cell where they are isolated from innocent people. But this book makes me think that a jail is arguably the worst place where minor offenders could be dragged into a cycle of crime. The prison system seems to be a bog, not for rehabilitation. 

2019/10/22

In memory of 신해철(Crom) 1968 05 06 - 2014 10 27

여러분도 이 기회에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학교 갈 나이에 학교에 가서 취직을 할 나이에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할 나이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을 나이에 아이를 낳고 집을 살 나이에 집을 사는 것이 과연 당신이 진짜 한 번이라도 원한 삶이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삶의 과정이 될 수는 있어도 삶의 진정한 목표이자 종착지가 될 수 있는지.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질문을 한다. 무섭지 않느냐고. 남들이 말하는 안전한 삶의 규칙을 계속 위반할 때마다 겁나지 않느냐고. 대답은 너무나 당연하다. 무섭다. 나도 사람인데. 그렇지만 내가 겁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정말로 겁이 많기 때문에 나는 내 나름의 삶의 방식을 택했다. 남들이 똑같이 걷는 길에서 낙오하는 것에 대한 무서움보다 내가 진실로 원하는 나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무서움이 훨씬 더 엄청나게 무서웠기 때문에 그냥 나의 방식을 택했다. 공포로써 공포를 제압했달까.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뿐 

<나에게  쓰는 편지> 

남들이 뭐래도 니가 믿는 것들을
포기하려 하거나 움추려 들지 마 

힘이 들 땐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
앞만 보면 날아가야 해
너의 꿈을 비웃는자를 애써 상대하지 마

<해에게서 소년에게>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가는 순간인 것을 영원히 함께 할 내일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기다림도 기쁨이 되어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게 새로울거야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게 달라질거야
<일상으로의 초대>
 
나 거친 삶 속에서 너와 마주친 그 순간 모든 게 바뀌어졌어
나 표현 못해도 내가 못 가진 그 따뜻함 싫지는 않았어
감추고 싶은 나의 지난날들 기억하기 싫은 내 삶의 흔적을
말하지 않아도 넌 그저 눈빛만으로 날 편안하게 해
먼 훗날 언젠가 나를 둘러싼 이 모든 시련이 끝나면 내 곁에 있어 줘
<먼 훗날 언젠가>

<날아라 병아리>를 부를 당시, 관객 맨 앞줄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로 온 힘을 다해 따라 부르던 몇 명의 남자 관객들에게 나는 정말이지 날아차기로 면상을 날려주고 싶었다. 어쿠스틱기타 한 대와 오케스트라 전체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정교한 타이밍을 타고 가야 하는 노래에서 박수를 치질 않나(장수 만세냐),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질 않나. 넥스트의 단독 공연이었다면 단언컨대 나의 날아차기는 실현되었을 것이다. (신해철 유고집 <마왕 신해철>)



바보처럼 사람들을 사랑한 사람, 인문학 도서를 무겁게 여기지 않은 사람, 만화책을 가벼이 여기지 않은 사람, 무명 신인의 음반일지언정 한 가지라도 미덕을 찾아내고자 했던 사람, 아무도 관심 없는 삶이라도 외면하지 않았던 사람, 사회적 약자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는 다양한 악덕에 대해 온몸으로 분노한 사람... 그는 우리 대중음악사에 등장한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인문주의 예술가, 르네상스인이었다. (강헌)

“하도 욕을 얻어먹어 영생할 것”이라 늘 장담했던 그이기에, 계속 우리 곁에 남아 오랫동안 우리를 통쾌하게 해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있을 때 잘해”라는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을 남긴 채 너무나 빨리 우리 곁을 떠났다. 어떤 죽음이든 상실감을 남기기 마련이나, 그의 죽음이 남긴 상실감은 예외적이다. 이 남다른 상실감은 그의 빈자리가 그 밖의 다른 누구로도 채워질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리라. (진중권)


언젠가 형이 그랬습니다. 생명은 태어나는 것 자체로 목적을 다한 것이기 때문에 인생이란 그저 보너스 게임일 뿐이라고요. 따라서 보너스 인생을 그냥 산책하듯이 그저 하고픈 것 마음껏 하면서 행복하라고 말했었죠.
지금 생각하면 형은 이 보너스까지도 참 멋지고 훌륭하게 그렸던 것 같습니다. 이제 더 좋은 곳에서 또다른 산책을 하면서 형이 좋아하는 음악과 삶에 관한 이야기 마음껏 하시겠죠. (서태지) 


지성을 갖춘 놀라운 ‘강심장’이었다. 지식인, 정치인의 허위를 광장에서 단 한마디로 날려보내던 신해철. 그 인격, 지성, 음악으로 스스로 시대의 예술가가 되었던 신해철. 당신은 그런 예술가였기에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문성근)



앞으로도 나는 결코 그의 명복을 빌지 않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그는 여전히 나와 같이 살아갈 것이므로. 우리가 그를 호명하고 그의 음악이 가진 감동을 나누는 한 그는 여전히 살아 숨 쉴 것이므로. 

이제 그의 이름 앞에 故라는 단어를 붙여야 하는가? 나는 거부하겠다. 신해철의 음악이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있는 한 그 이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미래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는 천재도 영웅도 아니었다. 다만 그에게는 언제나 '다음'이 있었다. 다음을 향한 불굴의 의지, 그것이 신해철이 지닌 가장 빛나는 예지였다.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장르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 (강헌 <신해철>)

생활의 소품으로서, 말하자면 설거지하면서 흥얼거릴 수 있는 음악도 있을 수 있고, 사랑 타령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생활의 위안이 될 수 있는 음악도 있지만, 어떤 메시지를 가지고 사회에 영향을 주고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음악도 있어야 하죠. 저는 핑크 플로이드에서 그런 예를 봤거든요.


나는 신해철은 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육신(肉身)은 사라졌지만, 그의 정신과 그의 철학과 그의 음악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가 불사조를 넥스트의 상징으로 삼은 건 영원히 살고자 했음이리라. (박준형, 오마이뉴스)









Goodbye Mr. Trouble 
꽃은 지고 달은 기울어 가네
아무런 인사도 남기지 않고
날은 가고 맘은 아물어 가네
산 사람 살아야 하는 거겠지
화를 내면 진다
눈물 흘리면 진다
웃지 못하면 티를 내면 진다
백번 천번을 고쳐 말해봐도
천 번 만 번 매일 져버리네
탄식으로 단을 쌓고
한숨으로 향을 피워
이제 꽃 한송이 올려
희망이라 부르며
그대를 보낸다

누군갈 사랑하는 일도
몹시도 미워하는 일도 모두
힘든 거라면 어차피 고된 거라면
사랑함이 옳지 않겠냐만
나는 그대가 밉고 또 밉고 또 미워서
고맙다는 말 대신 미안타는 말 대신
그대가 남겨둔 화분에 눈물을 뿌린다
Goodbye Mr. Trouble
남겨진 일들은 남은 자들의 것일 뿐
Goodbye Mr. Heartache (Lonely heart)
끝까지 살겠소
죽어도 살겠소
우리 살아서 그 모든 걸 보겠소




2019/10/21

N.EX.T IV: Lazenca - A Space Rock Op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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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집은 넥스트 사상 최대의 앨범 제작 비용이 투입되었고,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동원되어 서울 런던을 오가며 작업이 이루어졌다. 신해철은 당시 '태동기에 있는 우리 만화영화가 국제경쟁력을 갖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기 위한 작업'이라고 밝혔다.
수록곡 중 〈Mars, The Bringer Of War〉는 영국의 작곡가 구스타브 홀스트가 작곡한 행성 모음곡 중 첫 번째 악장을 사용했다. 《영혼기병 라젠카》방영 당시 오프닝 곡으로 〈Lazenca, Save us〉또는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엔딩 곡으로는 〈먼 훗날 언젠가〉가 사용되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
먼 훗날 언젠가

나 거친 삶 속에서 너와 마주친 그 순간 모든게 바뀌어졌어 

나 표현 못해도 내가 못 가진 그 따뜻함 싫지는 않았어 

감추고 싶은 나의 지난날들 기억하기 싫은 내 삶의 흔적을

말하지 않아도 넌 그저 눈빛만으로 날 편안하게 해 

먼 훗날 언젠가 나를 둘러싼 이 모든 시련이 끝나면 내 곁에 있어 줘

넌 내가 잊어버린 마음을 여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줬어 
넌 내가 포기했던 일상 속의 행복을 내게 돌려줬어 
좀 더 다정하게 말하려 해도 그럴 재주 없는 이런 나지만 
말하지 않아도 넌 그저 눈빛만으로 날 편안하게 해 
먼 훗날 언젠가 나를 둘러싼 이 모든 시련이 끝나면 
네가 편히 잠들 수 있도록 너의 머리맡을 나 항상 지킬게

네가 무서운 꿈을 깨어나 내 이름을 부를 땐 나 언제나 
말하지 않아도 넌 그저 눈빛만으로 날 편안하게 해 
먼 훗날 언젠가 나를 둘러싼 이 모든 시련이 끝나면 내 곁에 있어 줘 
먼 훗날 언젠가
먼 훗날 언젠가

한성별곡(2007) / 칼의 노래(2001)

한성별곡 

당쟁은 줄지않고 백성들의 삶은 나아지지가 않는다.
신료들도 백성들도 나를 탓하기에 바쁘다.
나의 간절한 소망을 따랐다는 이유로 소중한 인재들이 죽어나가고,
내가 꿈꾸던 새로운 조선은 저만치서 다가오질 않는다.
아무리 소름이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난 결코 저들을 이길 수 없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내가 백성들을 설득하지 못해 지는 것이다.
나의 신념은 현실에 조롱당하고 나의 꿈은 안타까운 희생을 키워가는데,
포기하지 않는 나는.. 과연 옳은 것이냐?




칼의  노래

"절망의 시대에서 헛된 희망을 설치하고 그 헛된 희망을 꿈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절망의 시대를 절망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서 통과해가는 한 인간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소설가 김훈)


“나는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텅 빈 바다 위로 크고 무서운 것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각사각 사각, 수평선 너머에서 무수한 적선들의 노 젓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환청은 점점 커지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환청을 떨쳐냈다. 식은 땀이 흘렀고 오한에 몸이 떨렸다. 저녁무렵까지 나는 혼자 앉아 있었다.”

무능하고 나약하며 잔인하기까지 한 왕 선조. 전장의 영웅으로 백성의 지지를 온몸에 받고 있는 이순신이 역모를 일으켜 자신을 죽이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한다. 선조와 탐관오리들은 논공행상을 해야 할 마당에 도리어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했으며 조정의 출정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고문한다. 원균의 함대가 칠전량 해전에서 전멸하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는 뻔뻔함과 비열함을 드러내는 자들이었다. 

왕과 권력자들이 자기 살 길을 찾아 떠난 후 의지가지없이 남은 백성과  나라를 책임져야 했기에, 가장임에도 혈육을 지켜주지 못했고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그로 인해 비통해한다. 게다가, 동료장수라고 할 수 있는 권률, 원균도 마음을 나누고 믿을 만한 이가 못 되니, 마음 둘 곳 없이 외로이 전장에 서게 된다. 지원군으로 온 명의 군대는 참전하지는 않고 실리를 챙기는 것에만 급급할 뿐이며, 그럼에도 약소국인 조선은 그들의 갑질을 참아내고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다. 조정의 군수물품 지원은 꿈도 꿀 수 없다. 오직 나라를 지켜야 하는 의무만 있을 뿐이다. 알아서 군량을 준비하고 무기를 정비하며 따르는 백성의 무리까지 건사한다. 이러한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한 한 인간의 절망과 고뇌가 절절이 느껴진다. 

적의 칼에 죽임을 당하지 않으면 임금의 칼에 죽임을 당할 것을 알기에 몸둘 곳이 없다고 말하는 장군은 차라리 전장에서 죽는 자연사를 원한다. 그렇기에 이순신 장군의 必生則死 必死則生는 의미심장한 말일 수밖에 없다. 결국 장군은 외로이 싸우다가 무술년(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전사한다.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바람결에 화약 연기 냄새가 끼쳐왔다. 이길 수 없는 졸음 속에서, 어린 면의 젖 냄새와 내 젊은날 함경도 백두산 밑의 새벽 안개 냄새와 죽은 여진의 몸 냄새가 떠올랐다. 멀리서 임금의 해소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냄새들은 화약 연기에 비벼지면서 멀어져 갔다. 함대가 관음포 내항으로 들어선 모양이다. 관음포는 보살의 포구인가. 배는 격렬하게 흔들렸고, 마지막 고비를 넘기는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선창 너머로 싸움은 고요해 보였다.
세상의 끝이……이처럼……가볍고……또……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이 세상에 남겨 놓고……내가 먼저……. 관음포의 노을이……적들 쪽으로…….

2019/10/16

Dunbar's Number: Why We Can Only Maintain 150 Relationships

The theory of Dunbar’s number holds that we can only really maintain about 150 connections at once. But is the rule true in today’s world of social media?


There are well-defined limits to the number of friends and acquaintances the average person can retain. But the question about whether these limits are the same in today’s digital world – one in which it’s common to have social media profiles, or online forums, with thousands of followers – is more complicated.
According to British anthropologist Robin Dunbar, the “magic number” is 150. Dunbar became convinced that there was a ratio between brain sizes and group sizes through his studies of non-human primates. This ratio was mapped out using neuroimaging and observation of time spent on grooming, an important social behaviour of primates. Dunbar concluded that the size, relative to the body, of the neocortex – the part of the brain associated with cognition and language – is linked to the size of a cohesive social group. This ratio limits how much complexity a social system can handle.
Dunbar and his colleagues applied this basic principle to humans, examining historical, anthropological and contemporary psychological data about group sizes, including how big groups get before they split off or collapse. They found remarkable consistency around the number 150.
According to the theory, the tightest circle has just five people – loved ones. That’s followed by successive layers of 15 (good friends), 50 (friends), 150 (meaningful contacts), 500 (acquaintances) and 1500 (people you can recognise). People migrate in and out of these layers, but the idea is that space has to be carved out for any new entrants.
Dunbar isn’t sure why these layers of numbers are all multiples of five, but says, “this number five does seem to be fundamental to monkeys and apes in general”.
Of course, all of these numbers really represent range. Extroverts tend to have a larger network and spread themselves more thinly across their friends, while introverts concentrate on a smaller pool of “thick” contacts. And women generally have slightly more contacts within the closest layers.


'사막 장미' 본뜬 카타르 국립박물관

'사막 장미(sand rose)'는 장미 모양을 가진 사막의 모래 덩어리를 뜻하는데, 해양 사막 지형에서 볼 수 있다. 모래에 갇혀 있던 해수가 증발하면서 모래와 미네랄이 엉켜 장미 모양의 결정체로 굳어지는 경우를 일컫는다. 드물게 발생해 행운의 상징으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