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1

한성별곡(2007) / 칼의 노래(2001)

한성별곡 

당쟁은 줄지않고 백성들의 삶은 나아지지가 않는다.
신료들도 백성들도 나를 탓하기에 바쁘다.
나의 간절한 소망을 따랐다는 이유로 소중한 인재들이 죽어나가고,
내가 꿈꾸던 새로운 조선은 저만치서 다가오질 않는다.
아무리 소름이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난 결코 저들을 이길 수 없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내가 백성들을 설득하지 못해 지는 것이다.
나의 신념은 현실에 조롱당하고 나의 꿈은 안타까운 희생을 키워가는데,
포기하지 않는 나는.. 과연 옳은 것이냐?




칼의  노래

"절망의 시대에서 헛된 희망을 설치하고 그 헛된 희망을 꿈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절망의 시대를 절망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서 통과해가는 한 인간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소설가 김훈)


“나는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텅 빈 바다 위로 크고 무서운 것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각사각 사각, 수평선 너머에서 무수한 적선들의 노 젓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환청은 점점 커지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환청을 떨쳐냈다. 식은 땀이 흘렀고 오한에 몸이 떨렸다. 저녁무렵까지 나는 혼자 앉아 있었다.”

무능하고 나약하며 잔인하기까지 한 왕 선조. 전장의 영웅으로 백성의 지지를 온몸에 받고 있는 이순신이 역모를 일으켜 자신을 죽이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한다. 선조와 탐관오리들은 논공행상을 해야 할 마당에 도리어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했으며 조정의 출정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고문한다. 원균의 함대가 칠전량 해전에서 전멸하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는 뻔뻔함과 비열함을 드러내는 자들이었다. 

왕과 권력자들이 자기 살 길을 찾아 떠난 후 의지가지없이 남은 백성과  나라를 책임져야 했기에, 가장임에도 혈육을 지켜주지 못했고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그로 인해 비통해한다. 게다가, 동료장수라고 할 수 있는 권률, 원균도 마음을 나누고 믿을 만한 이가 못 되니, 마음 둘 곳 없이 외로이 전장에 서게 된다. 지원군으로 온 명의 군대는 참전하지는 않고 실리를 챙기는 것에만 급급할 뿐이며, 그럼에도 약소국인 조선은 그들의 갑질을 참아내고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다. 조정의 군수물품 지원은 꿈도 꿀 수 없다. 오직 나라를 지켜야 하는 의무만 있을 뿐이다. 알아서 군량을 준비하고 무기를 정비하며 따르는 백성의 무리까지 건사한다. 이러한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한 한 인간의 절망과 고뇌가 절절이 느껴진다. 

적의 칼에 죽임을 당하지 않으면 임금의 칼에 죽임을 당할 것을 알기에 몸둘 곳이 없다고 말하는 장군은 차라리 전장에서 죽는 자연사를 원한다. 그렇기에 이순신 장군의 必生則死 必死則生는 의미심장한 말일 수밖에 없다. 결국 장군은 외로이 싸우다가 무술년(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전사한다.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바람결에 화약 연기 냄새가 끼쳐왔다. 이길 수 없는 졸음 속에서, 어린 면의 젖 냄새와 내 젊은날 함경도 백두산 밑의 새벽 안개 냄새와 죽은 여진의 몸 냄새가 떠올랐다. 멀리서 임금의 해소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냄새들은 화약 연기에 비벼지면서 멀어져 갔다. 함대가 관음포 내항으로 들어선 모양이다. 관음포는 보살의 포구인가. 배는 격렬하게 흔들렸고, 마지막 고비를 넘기는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선창 너머로 싸움은 고요해 보였다.
세상의 끝이……이처럼……가볍고……또……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이 세상에 남겨 놓고……내가 먼저……. 관음포의 노을이……적들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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