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2

In memory of 신해철(Crom) 1968 05 06 - 2014 10 27

여러분도 이 기회에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학교 갈 나이에 학교에 가서 취직을 할 나이에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할 나이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을 나이에 아이를 낳고 집을 살 나이에 집을 사는 것이 과연 당신이 진짜 한 번이라도 원한 삶이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삶의 과정이 될 수는 있어도 삶의 진정한 목표이자 종착지가 될 수 있는지.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질문을 한다. 무섭지 않느냐고. 남들이 말하는 안전한 삶의 규칙을 계속 위반할 때마다 겁나지 않느냐고. 대답은 너무나 당연하다. 무섭다. 나도 사람인데. 그렇지만 내가 겁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정말로 겁이 많기 때문에 나는 내 나름의 삶의 방식을 택했다. 남들이 똑같이 걷는 길에서 낙오하는 것에 대한 무서움보다 내가 진실로 원하는 나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무서움이 훨씬 더 엄청나게 무서웠기 때문에 그냥 나의 방식을 택했다. 공포로써 공포를 제압했달까.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뿐 

<나에게  쓰는 편지> 

남들이 뭐래도 니가 믿는 것들을
포기하려 하거나 움추려 들지 마 

힘이 들 땐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
앞만 보면 날아가야 해
너의 꿈을 비웃는자를 애써 상대하지 마

<해에게서 소년에게>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가는 순간인 것을 영원히 함께 할 내일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기다림도 기쁨이 되어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게 새로울거야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게 달라질거야
<일상으로의 초대>
 
나 거친 삶 속에서 너와 마주친 그 순간 모든 게 바뀌어졌어
나 표현 못해도 내가 못 가진 그 따뜻함 싫지는 않았어
감추고 싶은 나의 지난날들 기억하기 싫은 내 삶의 흔적을
말하지 않아도 넌 그저 눈빛만으로 날 편안하게 해
먼 훗날 언젠가 나를 둘러싼 이 모든 시련이 끝나면 내 곁에 있어 줘
<먼 훗날 언젠가>

<날아라 병아리>를 부를 당시, 관객 맨 앞줄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로 온 힘을 다해 따라 부르던 몇 명의 남자 관객들에게 나는 정말이지 날아차기로 면상을 날려주고 싶었다. 어쿠스틱기타 한 대와 오케스트라 전체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정교한 타이밍을 타고 가야 하는 노래에서 박수를 치질 않나(장수 만세냐),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질 않나. 넥스트의 단독 공연이었다면 단언컨대 나의 날아차기는 실현되었을 것이다. (신해철 유고집 <마왕 신해철>)



바보처럼 사람들을 사랑한 사람, 인문학 도서를 무겁게 여기지 않은 사람, 만화책을 가벼이 여기지 않은 사람, 무명 신인의 음반일지언정 한 가지라도 미덕을 찾아내고자 했던 사람, 아무도 관심 없는 삶이라도 외면하지 않았던 사람, 사회적 약자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는 다양한 악덕에 대해 온몸으로 분노한 사람... 그는 우리 대중음악사에 등장한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인문주의 예술가, 르네상스인이었다. (강헌)

“하도 욕을 얻어먹어 영생할 것”이라 늘 장담했던 그이기에, 계속 우리 곁에 남아 오랫동안 우리를 통쾌하게 해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있을 때 잘해”라는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을 남긴 채 너무나 빨리 우리 곁을 떠났다. 어떤 죽음이든 상실감을 남기기 마련이나, 그의 죽음이 남긴 상실감은 예외적이다. 이 남다른 상실감은 그의 빈자리가 그 밖의 다른 누구로도 채워질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리라. (진중권)


언젠가 형이 그랬습니다. 생명은 태어나는 것 자체로 목적을 다한 것이기 때문에 인생이란 그저 보너스 게임일 뿐이라고요. 따라서 보너스 인생을 그냥 산책하듯이 그저 하고픈 것 마음껏 하면서 행복하라고 말했었죠.
지금 생각하면 형은 이 보너스까지도 참 멋지고 훌륭하게 그렸던 것 같습니다. 이제 더 좋은 곳에서 또다른 산책을 하면서 형이 좋아하는 음악과 삶에 관한 이야기 마음껏 하시겠죠. (서태지) 


지성을 갖춘 놀라운 ‘강심장’이었다. 지식인, 정치인의 허위를 광장에서 단 한마디로 날려보내던 신해철. 그 인격, 지성, 음악으로 스스로 시대의 예술가가 되었던 신해철. 당신은 그런 예술가였기에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문성근)



앞으로도 나는 결코 그의 명복을 빌지 않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그는 여전히 나와 같이 살아갈 것이므로. 우리가 그를 호명하고 그의 음악이 가진 감동을 나누는 한 그는 여전히 살아 숨 쉴 것이므로. 

이제 그의 이름 앞에 故라는 단어를 붙여야 하는가? 나는 거부하겠다. 신해철의 음악이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있는 한 그 이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미래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는 천재도 영웅도 아니었다. 다만 그에게는 언제나 '다음'이 있었다. 다음을 향한 불굴의 의지, 그것이 신해철이 지닌 가장 빛나는 예지였다.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장르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 (강헌 <신해철>)

생활의 소품으로서, 말하자면 설거지하면서 흥얼거릴 수 있는 음악도 있을 수 있고, 사랑 타령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생활의 위안이 될 수 있는 음악도 있지만, 어떤 메시지를 가지고 사회에 영향을 주고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음악도 있어야 하죠. 저는 핑크 플로이드에서 그런 예를 봤거든요.


나는 신해철은 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육신(肉身)은 사라졌지만, 그의 정신과 그의 철학과 그의 음악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가 불사조를 넥스트의 상징으로 삼은 건 영원히 살고자 했음이리라. (박준형, 오마이뉴스)









Goodbye Mr. Trouble 
꽃은 지고 달은 기울어 가네
아무런 인사도 남기지 않고
날은 가고 맘은 아물어 가네
산 사람 살아야 하는 거겠지
화를 내면 진다
눈물 흘리면 진다
웃지 못하면 티를 내면 진다
백번 천번을 고쳐 말해봐도
천 번 만 번 매일 져버리네
탄식으로 단을 쌓고
한숨으로 향을 피워
이제 꽃 한송이 올려
희망이라 부르며
그대를 보낸다

누군갈 사랑하는 일도
몹시도 미워하는 일도 모두
힘든 거라면 어차피 고된 거라면
사랑함이 옳지 않겠냐만
나는 그대가 밉고 또 밉고 또 미워서
고맙다는 말 대신 미안타는 말 대신
그대가 남겨둔 화분에 눈물을 뿌린다
Goodbye Mr. Trouble
남겨진 일들은 남은 자들의 것일 뿐
Goodbye Mr. Heartache (Lonely heart)
끝까지 살겠소
죽어도 살겠소
우리 살아서 그 모든 걸 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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